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요한 네스켄스 (문단 편집) === 클럽 === 고향의 RHC 헴스테데에서 축구를 시작했으며 [[1970년]] [[리누스 미헬스]] 감독의 눈에 띄어 [[AFC 아약스]]로 이적했다. 아약스 이적 첫 시즌까지만 해도 네스켄스는 풀백이 주 포지션이었다. 아약스 이적 첫 시즌 [[파나시나이코스]]와의 유러피언컵 결승전에 선발 출장하며 팀의 첫 유러피언컵 우승에 공헌한 네스켄스는 이후 중앙 미드필더로 보직을 완전히 바꿨다. 풀백 출신이었던 그는 지칠 줄 모르는 체력을 앞세워 에이스 [[요한 크루이프]]를 보좌했고, 유수의 득점을 뽑아냈다. 크루이프, 카이저, 수르비어 등의 동료들과 함께 네스켄스는 유러피언 컵 3연패를 경험했고, [[1974 FIFA 월드컵 서독|1974년 서독 월드컵]]이 끝난 이후 은사인 미헬스가 이끄는 [[FC 바르셀로나]]에 입단했다. 바르셀로나에서 그는 역시나 크루이프의 보좌관 역할을 수행했고 [[요한 크루이프]]를 이은 'Johan Segon'이라는 별명을 받기도 했다. 당시 [[라리가]]의 지배자는 [[레알 마드리드 CF|레알 마드리드]]였고 네스켄스는 맹활약했음에도 불구하고 많은 우승 트로피를 얻지 못했다. 그러나 1975-76 시즌 32경기 12골을 득점, 이때만큼은 크루이프보다 훌륭한 퍼포먼스를 보여주며 1975-76 시즌부터 시상한 [[돈 발롱]] 라리가 최우수 외국인 선수상의 첫번째 수상자가 된다. 1977-78 시즌에서는 [[에스타디오 산티아고 베르나베우]]에서 열린 [[코파 델 레이]] 결승전에서 라스팔마스를 격파하고 [[코파 델 레이]] 우승을 차지하였고 1978-1979 시즌에는 [[포르투나 뒤셀도르프]]를 연장 접전끝에 4:3으로 격파하고 [[UEFA 컵위너스컵]]도 들어올렸다. 그후 꽤나 이른 나이에 [[메이저리그 사커|MLS]]의 [[뉴욕 코스모스]]로 이적했고, 5년간의 뉴욕 생활을 끝낸 네스켄스는 30대의 노장이 되어있었고, 자국의 [[FC 흐로닝언]]에 입단해 잠깐 활약한 뒤 다시 미국의 포트 로더데일 선에 입단했다. 이후 인도어 사커 리그 소속의 캔자스시티 코메츠에서 활약한 네스켄스는 여러 팀을 떠돌았고 1991년 40세의 나이에 스위스의 FC 주크에서 현역 생활을 마감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